미국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핵심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10일(현지시각) 파산을 선언하면서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가 동시에 패닉에 빠졌다. SVB는 실리콘밸리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은행으로 스타트업 자금줄의 핵심인 데다, 자칫하면 금융권 위기가 미국 전역으로 번질 수 있어서다. SVB 파산은 미국 역대 두 번째로 큰 은행의 파산이다.
현재 미국 금융권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SVB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금융 시스템으로 번질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SVB는 담보 자산이 없는 스타트업에도 대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년간 실리콘밸리가 큰 호황을 누리면서 SVB도 함께 성장했다. 고객인 투자자와 스타트업의 자금이 넘쳤기 때문이다. 이에 SVB의 예금액은 2017년 말 440억 달러에서 2021년 말 1890억 달러로 4배 이상 급증했다. 반면 대출은 230억 달러에서 660억 달러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조가 SVB에 치명타를 가했다. 은행은 예금과 대출 금리 격차만큼 수익을 얻기 때문에 대출보다 예금이 많다는 것은 향후 수익이 악화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SVB는 2021년까지 고객 예금으로 모기지 채권과 국채에 1280억 달러를 투자해 수익을 벌충했다. 당시에는 기준금리가 낮아 국채가격이 높았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2022년들어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준금리가 상승했고 채권 가격은 떨어졌다. 또 고객인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까지 힘들어졌다. 손실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객에게 지급할 이자는 커졌지만 투자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줄어든 것이다. 이에 고객 예금은 2021년 말 1890억 달러에서 2022년 말 1730억 달러로 줄었다.
SVB는 일반 은행이 아닌 스타트업 대상 은행이라는 점에서 다른 은행과 달르다. 연방 보험은 예금 계좌당 최대 25만달러를 보장하는데 일반 은행은 대다수 보장 대상이다. 하지만 SVB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계좌에 25만달러 이상씩 예치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현재 예금의 약 93%는 예금 보장 적용을 못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일 수많은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스타트업을 상대로 인출을 종용한 이유다. 벤처캐피털인 갤럭시미디어는 포트폴리오사를 상대로 한 이메일에서 “지금은 거래 은행을 두 개 이상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유니언스퀘어벤처는 창업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SVB 예금 계좌에 최대 25만달러(약 3억3202만원)만 보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VB는 앞서 2조원대 규모인 18억 달러 손실을 입더라도 210억달러 규모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매각해 포지셔닝을 청산하기로 결심했다. 또 22억5000만달러 규모로 증자를 단행하고 벤처캐피털인 제너럴애틀랜틱(GA)으로부터 5억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 새 증자 계획이 무산됐다. 이에 모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은 매각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금융당국은 인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다.
마켓워치는 SVB가 18억달러 규모 세후 손실을 감수하면서 안정적인 미국채를 매각한데 대해 SVB가 대출 둔화에 직면한 시그널로 분석했다. 중요한 것은 순이자마진이다. 순이자마진은 대출·투자로 일어난 수익과 예금·차입에 따른 비용의 격차인 스프레드다. SVB의 순이자마진은 그동안 상승 후 하락 반전했다. 2021년 4분기 1.91%에서 이듬해 1·2분기 각각 2.13%, 2.24%로 상승한 뒤 3분기 2.28%, 4분기 2.0%로 하락한 상태다. 통상 은행은 금리가 상승하면 예·대금리 차이가 발생해 수익이 증가한다. 기준 금리 인상 시기에 순이자마진이 상승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SVB는 그렇지 못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 108개 은행 가운데 순이자마진이 감소한 곳은 10곳에 달했다.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곳은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커스터머스 뱅코프로 1.42%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파산에 대해 로 카나 하원의원은 “SVB는 테크 생태계의 생명선”이라면서 “은행이 실패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그것이 다른 회사에 인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든, 예금자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재무부의 도움을 받거나 해야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