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핵심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10일(현지시각) 파산을 선언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라는 법인을 설립해 SVB가 보유한 예금을 모두 이전받고 자산 매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조치에 따라 25만달러 예금보험 한도 이내 예금주들은 13일 이후 예금을 인출할 수 있다. 또 비보험 예금주들은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액에 대해 FDIC가 지급하는 공채증서를 받아 갈 수 있다.
SVB의 총자산은 2090억달러, 총예금은 1754억달러다.
SVB 파산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무너진 JP모건 체이스의 워싱턴뮤추얼 파산 이후 두 번째 큰 규모로 꼽힌다. 그만큼 시장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앞서 SVB는 “18억달러의 세후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210억달러에 달하는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SVB는 그동안 초과 현금 대다수를 미국 국채 등에 투자했는데,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보유 자산인 국채 가격이 크게 하락해 포지셔닝을 청산한다는 입장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반적으로 은행들은 손해를 보면서 보유 채권을 매각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대량예금인출 염려가 있을 때 현금 확보를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고객인 스타트업이 보유한 자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이를 위해 SVB는 22억5000만달러 규모로 증자를 단행하고 벤처캐피털인 제너럴애틀랜틱(GA)으로부터 5억달러를 투자받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루 새 증자 계획이 무산됐다.
모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은 매각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금융당국은 인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주지 않자 이례적으로 빠르게 폐쇄를 선언했다.
이번 SVB의 파산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연준 등 관계 기관과 만나 SVB 사태 대책을 논의하면서 은행 시스템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스타트업 생태계 역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SVB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될 은행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예금과 대출 서비스 외에 스타트업을 상대로 투자은행, 벤처캐피털, 사모펀드, 브라이빗뱅킹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SVB에 따르면, 미국 테크·헬스케어 벤처기업 중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2009년 이래 2300억달러 규모 투자유치에 참여했다. 시스코, 에어비앤비, 우버, 링크드인 등 수많은 스타트업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이 같은 소식에 S&P500은 1.45% 하락했고 나스닥은 1.76% 하락했다. SVB파이낸셜그룹의 주식은 이날 정부 개입으로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