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안보 차원 제재조치 발표
사모펀드·벤처캐피털 투자 금지
중국판 챗GPT '인스퍼' 제재로
미국 시스코·인텔·IBM도 영향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 첨단 산업에 미국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제한하는 제재 조치를 조만간 시행한다. 중국의 기술 개발을 억제하는 동시에 '월가' 달러의 중국 유입까지 차단하는 전방위적 압박이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와 상무부는 전날 미국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국가안보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외국 기술에 대한 미국 자본 투자를 막는 새로운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미국 투자자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미국 자본과 전문 지식이 우리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의 군사 현대화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오는 9일 발표될 2024회계연도 백악관 예산에 관련 재원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 당국자는 이번 규제에 첨단 반도체,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등 분야에 대한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미래 중국 투자 가능성까지 고려한 정보도 조사할 수 있도록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국 기업에 투자한 미국 자본은 약 110억달러(14조원)로 추산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수개월에 걸쳐 중국에 대한 투자제한 조치를 준비해왔고, 주요 7개국(G7)에도 지지를 호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동맹국이 공조해서 중국의 첨단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줄을 끊겠다는 취지다.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미국 세쿼이아캐피털은 이미 중국 반도체와 양자컴퓨터 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 시 사전심사를 개시했다.
월리 아데예모 미국 재무부 부장관은 최근 한 행사에서 "내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경쟁과 국가안보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이라면서 "그런 선은 때때로 분명히 하기 어렵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작년 9월 미국의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외국 자본의 투자를 철저히 심사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사전심사를 통해 중국 자본의 미국 첨단 산업 유입을 막겠다는 뜻이다. 이로써 바이든 행정부는 안보 관점에서 미국 자금의 중국 유출, 중국 자금의 미국 유입 등 양방향에서 자본을 통제하게 된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수출 통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화웨이에 부품 수출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작년 10월부터 반도체 산업의 대중국 수출 통제를 강화했고 반도체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와 일본의 공조도 이끌어냈다. 미국에 반도체지원법에 근거해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는 10년간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 투자를 금지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도 마련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일 중국군 현대화 지원, 이란 제재 위반,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28개 중국 기업을 무더기로 수출 제재했다. 이러한 블랙리스트 목록에 중국판 챗GPT를 개발한 인스퍼그룹(낭조정보)이 포함되면서 이에 협력하고 있던 미국 빅테크 기업에도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인스퍼그룹은 1945년 설립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보기술(IT) 업체로, 각종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1970년 중국의 첫 인공위성 발사체에 공급한 바 있다. 또 1983년 중국에서 첫 PC를 제조했고, 1990년 들어 각종 서버를 생산했다. 현재 클라우드 서버 분야에서 중국 1위, 세계 3위로 꼽힌다. 특히 2021년 10월에는 중국판 초거대 인공지능인 유안 1.0을 내놓았다. 유안 1.0은 인간 두뇌의 시냅스에 해당하는 파라미터가 2457억개로 오픈AI의 GPT-3.5(1750억개)에 비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당 초거대 인공지능은 자연어 처리를 통해 능숙하게 중국어를 구사한다.
인스퍼그룹은 그동안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되자 영향력은 크지만 중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은 미국 빅테크 기업을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2005년 2000만달러를 투자해 합작법인을 만든 뒤 2016년에는 '윈도 서버 2016' 확장에도 협력했다. 2014년에는 미국의 대표적 가상화 기업인 VM웨어와 클라우드 컴퓨팅 협약을 발표했고, 2016년에는 미국의 대표적 솔루션 업체인 시스코와 함께 총 1억달러를 투자해 중국 산둥성에 합작법인을 세웠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7년에는 IBM과 공동으로 총 10억위안을 투자해 인스퍼파워를 설립했다. IBM은 인스퍼그룹을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인스퍼그룹은 IBM 기술을 활용해 서버 제조·판매 시설을 확충한다는 복안이었다. 인텔과도 제휴를 맺은 상태다.
인스퍼그룹은 이번 미국 제재에 대해 블룸버그를 통해 "관련 보도를 인지하고 있고 검증과 평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시스코와 인텔, IBM은 논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제재로 인해 중국 클라우드 산업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라미터 수가 10억개 이상인 초거대 인공지능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향후 중국의 인공지능 산업에도 일정 부분 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얼마나 오랫동안 인스퍼그룹을 주시했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인스퍼그룹의 클라우드 서비스는 중국의 혁신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